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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집행된 김선경 : 67년 전, 부산을 뒤흔든 잔혹한 살인 사건

by Freesia CRIME Story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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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전날, 국제시장을 뒤흔든 총성: 김선경의 잔혹한 범죄

1957년 9월 7일.

추석을 하루 앞둔 부산 국제시장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밀수업에 연루된 상인 4명이 한밤중에 무참히 살해당하고, 두 명이 중상을 입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바로 김선경.

선박회사에서 해고된 뒤 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인물입니다.

그의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 경제적 궁핍과 밀수: 사건의 발단

김선경은 1931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5세에 가족과 함께 남하했습니다.

해군 복무를 마친 뒤 부산의 선박회사에서 근무했지만, 밀수 행위가 발각돼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그는 다시 한 번 밀수로 돈을 벌고자 했고,

부산 국제시장 상인들에게 접근해 일본에서 밀수입한 물건을 거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9월 6일, 그는 상인들에게 "다음날까지 225만환(현재 약 1억 2000만 원)을 준비하라"며 밀수품을 저렴하게 넘겨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이 돈을 강탈하는 것이었죠.

김선경은 자신의 하숙집에서 함께 살던 해군 임모씨의 권총과 탄환 8발을 훔치고, 범행에 사용할 지프차까지 준비했습니다.

🚨 피로 물든 추석 전날: 무참히 살해된 상인들

1957년 9월 7일, 저녁 무렵 김선경은 20대 남성 김모씨와 함께 지프차를 몰고 상인들과의 약속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상인 4명과 상인 가족 1명을 차례로 태우고 이동했습니다.

밤 9시 30분경, 김해군 대저면 구포교 근처에 도착하자, 김선경은 차를 멈추고 불을 모두 껐습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그는 권총을 꺼내들고, 차 안의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앞좌석에 있던 두 남성은 총격을 받고 차 밖으로 내던져졌고,

도망가던 여성들도 뒷통수를 맞고 즉사했습니다.

뒤에서 저항하던 생존자는 김선경에게 제압당해 차 밖으로 던져졌습니다.

👤 도피와 체포: 김선경의 비극적 최후

김선경은 범행 직후 지프차를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경찰은 생존자 증언을 토대로 범인이 김선경임을 빠르게 파악하고, 현상금을 걸며 전국적인 수색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김선경은 대중교통과 화물열차를 이용해 경주와 서울로 도망쳤고, 서울 신당동에서 은신하며 노숙자 생활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김선경은 결국 자신과 군 복무를 함께했던 김모 형사에게 체포됩니다.

을지로 국도극장 앞에서 우연히 김선경을 발견한 김 형사는 그를 기습적으로 제압했고,

김선경은 자신에게 총을 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날, 그는 서울중부경찰서로 연행된 뒤 부산으로 압송되었습니다.

⚖️ 마지막 결말: 김선경의 사형 집행

체포된 김선경은 자신이 자살하려고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범죄는 명백했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부산에서 밀수를 하던 시절,

해군헌병대 수사계장과 공모해 경찰들을 매수하고 밀수 행위를 지속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결국 1958년 4월, 강도살인 및 시신유기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고,

1959년 1월 17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그의 삶은 끝이 났습니다.

📌 사건의 초점: 절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잔인한 범행

이 사건은 경제적 궁핍에서 시작된 김선경의 범죄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밀수와 불법 행위로 점철된 그의 삶은 결국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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