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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양조 공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미스터리: 1978년의 비극

by Freesia CRIME Story 202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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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 1978년. 그해는 백화양조가 군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백화양조는 1945년에 설립된 회사로, 청주와 인삼주 등 다양한 술을 제조하며 인기를 끌었고,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백화양조의 본거지는 군산에 위치해 있었고, 이곳에서 사건의 주인공인 백화양조 회장의 아들, 강군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강군은 군산의 부잣집 아들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동시에, 군산의 모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름다운 3학년 학생, 김양은 남학생들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을 만큼 유명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김양은 이미 강군과 오랜 시간 교제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초등학교 동급생으로 만나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김양의 가족은 강군과의 교제를 매우 기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백화양조 회장의 아들이 딸과 사귄다는 것은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김양의 집안은 가난한 편이었고, 김양도 이를 의식했는지 같은 해 4월에 어머니에게 "엄마, 이제 우리 가족도 잘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마 김양과 강군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오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강군의 같은 반 친구가 "김양의 남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강군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커졌습니다.

결국 강군은 김양을 미행하기 시작했고, 새벽마다 과외 수업을 받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서는 김양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군은 김양을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한 백화양조 공장으로 데려갑니다.

새벽 시간이라 공장은 고요했고, 강군은 김양을 2층 실험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강군은 김양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양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강군은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김양은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옷을 벗고 강군 앞에 섰습니다.

 

 

그 순간, 김양은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헸습니다.

강군은 당황했고, 김양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사건을 감추기 위해 김양을 대형 술통에 집어넣고, 김양의 옷을 술통 앞에 두어 마치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이후 강군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공장을 떠났습니다.

 

 

약 20일 후, 공장 직원들이 김양의 실종을 조사하던 중 실험실의 술통에서 김양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수사가 시작되었고, 강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강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모든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지만,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결국 강군은 범행을 자백했고, 살인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재판에서 강군은 단기 2년 6개월, 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81년에 만기 출소한 강군은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기소에 사용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백화양조는 이 사건 이후 큰 타격을 입고 소주 사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백화양조의 술이 시체가 들어간 채로 만들어졌다는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괴담은 백화양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여고생의 시체로 만든 술이라는 끔찍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진짜 공포는 김양을 살해한 강군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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