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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공포, '미친 개' 아치볼드 비티 맥카페이의 광기"

by Freesia CRIME Story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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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 호주 사람들에게 아치볼드 비티 맥카페이라는 이름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미친 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는 그의 6개월 아들이 죽은 후, 일곱 명을 죽이면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광기 어린 믿음을 가지고 살인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끔찍한 행적을 따라가 볼까요?

아치의 비극적인 출발

 

아치볼드 비티 맥카페이, 줄여서 아치. 그는 맥카페이 가족의 외동 아들로, 1958년에 스코틀랜드에서 호주로 이주했습니다. 가족은 멜버른을 거쳐 시드니 서쪽 교외인 베스 힐로 이사했어요.

아치는 어려서부터 반항적이었고, 부모의 세심한 돌봄 없이 자라며 나쁜 길로 빠졌습니다.

12살 때는 절도 행위로 처벌을 받았고, 18살 때는 다섯 번의 구속 기록을 가졌습니다.

아치는 점점 더 폭력적인 인물이 되어 갔습니다.

결혼과 더 큰 불행

1972년, 아치는 아름다운 소녀 제니스 레딩턴과 결혼했습니다.

제니스는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고,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아치는 점점 술과 진정제에 빠져들며 아내를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치의 폭력은 제니스가 임신 중일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치는 술에 취해 제니스의 목을 조르며 폭행했고, 제니스는 겨우 병원으로 이송되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복수의 시작

 

1973년 2월 4일, 아치와 제니스는 첫 아들 크레이그 아치볼드를 출산했습니다.

아치의 태도는 아들이 태어나면서 달라졌고, 그는 아들을 사랑하며 돌봤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73년 3월 17일, 제니스가 아들과 함께 잠든 사이 크레이그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사 결과, 제니스가 수유 중 잠들면서 아들을 깔아뭉개는 사고로 크레이그가 사망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비극은 아치의 마음을 망가뜨렸고, 그는 아내를 미워하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복수의 목표: 일곱 명의 목숨

 

아들은 죽었지만 아치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곱 명을 죽이면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인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치는 갱단을 결성했고, 첫 번째 범죄는 1973년 8월 24일 밤에 벌어졌습니다.

갱단은 50대의 신문 판매업자 조지 앤슨을 공격했고, 아치는 조지를 일곱 번 찔러 살해했습니다.

아치는 조지를 죽인 후 자신의 아들 크레이그의 환영을 보았고, 그의 살인 계획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연쇄 살인의 공포

 

아치와 그의 갱단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8월 27일, 42세의 광부 로널드 닐 폭스를 살해했고, 그 후에도 연쇄 살인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갱단은 아치의 광기 어린 명령을 따르며 범죄를 저질렀고, 결국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법의 심판과 논란의 결말

아치는 체포된 후에도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지 않았고, 일곱 명을 죽여야 한다는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법정에서 아치는 일곱 명의 목숨을 빼앗아야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아치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4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석방되었습니다.

 

그의 석방은 여론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당국은 아치를 호주에서 추방하여 스코틀랜드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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