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 "우정이 만든 범죄, 소설 같은 현실!"

by Freesia CRIME Story 2024. 9. 28.
반응형

🩸 소녀들의 비극적인 우정과 범죄의 시작

 

 

 

폴린 이본 파커는 1938년 5월 26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출생은 기쁨이 아닌 걱정을 안겼습니다.

이미 세 명의 아이를 둔 허버트 리퍼와 호노라 파커는 폴린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그녀도 선천적인 질병과 허약한 체질을 물려받았습니다.

특히 다섯 살 때 골수염에 걸려 죽을 뻔한 폴린은 그 이후로 손과 발에 장애가 남아, 체육 활동에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 친구가 되어준 줄리엣

 

 

 

1952년, 폴린은 크라이스트처치의 한 여자 학교에 진학하면서 줄리엣 마리온 할미를 만났습니다.

두 소녀는 비슷한 처지 덕분에 빠르게 친해졌고, 서로의 힘든 삶을 이해해 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폴린은 줄리엣과 함께 소설을 쓰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갔고, 그 속에서 진나라와 데보라라는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꿈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시나리오 작가나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줄리엣의 집안 사정은 급작스럽게 나빠지게 됩니다.

줄리엣의 아버지가 학교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사임하고, 어머니는 외도로 이혼을 요구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줄리엣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사해야 했고, 두 소녀는 헤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 작별 인사와 비극의 시작

 

1954년 6월 22일, 폴린은 줄리엣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빅토리아 파크의 한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고 나서, 두 소녀는 공원에서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즐거운 시간이 갑자기 비극으로 뒤바뀌게 되는데, 폴린의 어머니 호노라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진 것입니다.

 

호노라

 

 

레스토랑의 주인 아그네스 리치는 두 소녀의 다급한 요청에 따라 구급차를 부르지만, 호노라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그녀는 머리에 충격을 입고 있었고, 부검 결과 45군데 이상의 상처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두 소녀는 자연스럽게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 수사와 고통의 진실

초기 조사에서 두 소녀의 진술이 다소 모순되었지만, 형사 맥도날드 브라운은 그들의 배경을 조사하면서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폴린과 줄리엣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점과, 호노라가 폴린과 줄리엣의 관계를 걱정하며 정신과 의사를 찾았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두 소녀는 동성애적인 관계일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당시 뉴질랜드에서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폴린의 일기장이 경찰에게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그녀의 어머니를 해치기로 결심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라는 문구가 그들의 범행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두 소녀의 사건 이후 형사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폴린과 줄리엣은 모두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사건은 법원에서 특별한 절차를 따랐습니다.

1954년 8월 28일, 두 소녀는 크라이스트처치의 소년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 재판의 결과

 

 

 

재판 과정에서 두 소녀는 범행을 인정하였고, 법원은 그들의 나이와 심리적 상태를 고려하여 형량을 결정했습니다.

폴린은 5년의 보호감호형을 선고받았고, 줄리엣은 6년의 보호감호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보호시설에서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법원은 두 소녀의 배경과 사건의 전모를 살펴본 결과,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가 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습니다.

💔 출소 후의 생애

폴린

 

형량을 마친 후, 두 소녀는 각각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폴린은 출소 후 영국 켄트 카운티로 이주하여 힐러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어린이 승마 학교를 운영하며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 폴린은 조용한 일상을 찾아갔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 사건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줄리엣

 

한편,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줄리엣은 더욱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앤 페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후 영국에서 지내다가 스코틀랜드로 이주했습니다.

줄리엣은 '토마스 피트'라는 주리 소설 시리즈를 출판하였고, 이 책들은 출판과 동시에 30개국에서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그녀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작품 중 한 권이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페리가 바로 호노라 살인 사건의 범인 줄리엣 미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누군가가 인터넷에 진실을 폭로하면서 사람들은 페리의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4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은 줄리엣에게 아무런 악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피터 잭슨 감독을 포함한 많은 감독들이 폴린과 줄리엣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중 '천상의 피조물'이라는 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줄리엣을, 멜라니 스키가 폴린을 연기했습니다.

🎬 영화 속의 오해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동성애 커플로 묘사되었지만, 줄리엣은 영화가 개봉된 후 인터뷰에서 자신과 폴린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남들이 오해하기 쉬웠던 점은 인정하면서, 그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유대 관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 결론

두 소녀의 사건은 결국 뉴질랜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두 사람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지만, 그들의 특별한 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은 영원히 그들의 삶에 그늘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의 형량과 출소 후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이해하게 되며, 과거의 상처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에 공감이 가셨다면, 아래에 댓글 남겨주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공감과 댓글은 제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는데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제 블로그를 구독해 주세요.

 

 

반응형